
밤잠을 설치게 만든 조선의 공포, <킹덤> 정주행 가이드를 시작하며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좀비물을 그리 즐기는 편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징그럽고 깜짝 놀라게 하는 연출이 전부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넷플릭스에서 <킹덤>을 만난 후, 그 편견은 보기 좋게 깨졌습니다. "조선 시대와 좀비라니, 이게 정말 어울릴까?" 했던 의구심은 단 1화 만에 "왜 이걸 이제야 봤지?"라는 감탄으로 바뀌었죠.
단순한 공포를 넘어 권력의 탐욕과 백성의 배고픔을 이토록 처절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요? 오늘은 아직 이 전율을 느껴보지 못한 분들, 혹은 다시 한번 '킹덤'의 세계관에 빠져보고 싶은 분들을 위해 시즌 1부터 2, 그리고 스핀오프인 '아신전'까지 완벽하게 즐길 수 있는 정주행 가이드를 준비했습니다. 제 개인적인 통찰을 듬뿍 담아 작성했으니, 함께 조선의 지옥도를 따라가 보시죠.
1. 시즌 1: 배고픔은 어떻게 괴물이 되었는가
시즌 1을 관통하는 가장 무거운 키워드는 바로 '배고픔'입니다. 김은희 작가는 서양의 좀비 서사를 한국적인 맥락으로 가져오면서, 그 원동력을 단순한 바이러스가 아닌 '살고자 하는 처절한 욕구'로 설정했습니다. 지율헌에서 배고픔에 지쳐 인육을 나눠 먹어야 했던 백성들의 모습은, 괴물보다 더 무서운 현실의 비극을 보여줍니다.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고, 왕은 그 백성을 하늘로 삼는다."
극 중 세자 이창(주지훈 분)이 마주한 현실은 참혹했습니다. 왕은 이미 죽었으나 죽지 못한 채 괴물로 연명하고 있고, 나라는 조학주(류승룡 분)의 손아귀에서 썩어가고 있었죠. 시즌 1은 이창이 궁궐을 나와 백성들의 참상을 목격하며 진정한 리더로 성장해가는 '로드무비'의 성격도 띠고 있습니다. 밤에만 움직이는 줄 알았던 좀비들이 사실은 '온도'에 반응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마지막 장면의 소름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네요.
2. 시즌 2: 핏줄에 대한 집착과 진정한 군주의 자격
시즌 1이 역병의 확산과 공포에 집중했다면, 시즌 2는 그 역병을 이용해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인간들의 '탐욕'을 정면으로 다룹니다. 특히 중전 계비 조씨의 광기는 소름 돋을 정도였죠. "천한 핏줄은 안 된다"며 혈통에 집착하던 이들이, 정작 자신들의 욕망 때문에 나라를 피바다로 만드는 역설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시즌 2의 백미는 역시 마지막 궁궐 전투신입니다. 얼어붙은 연못 위에서 펼쳐지는 인간과 괴물의 사투는 영상미 측면에서도 압도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더 주목한 것은 이창의 선택이었습니다. 왕좌를 내려놓고 역병의 근원을 찾아 떠나는 그의 뒷모습에서, 우리는 혈통이 아닌 '책임'을 다하는 리더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마 이 지점이 전 세계 팬들이 <킹덤>에 열광한 진짜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3. 아신전: 모든 비극의 시작, 한 서린 북방의 끝자락
시즌 2 마지막 장면에서 짧지만 강렬하게 등장했던 전지현(아신 역)의 정체가 밝혀지는 스핀오프, <아신전>은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앞선 시리즈가 긴박한 추격전이었다면, 아신전은 아주 서늘하고 고요한 '복수극'에 가깝습니다. 왜 생사초가 조선 땅에 퍼지게 되었는지, 그 기원을 따라가는 과정은 슬프다 못해 처연하기까지 합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성저야인'들의 서러움과 배신감은 아신이라는 인물을 괴물로 만들었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을 죽여버리겠다"는 그녀의 다짐은, 결국 시즌 1과 2의 비극으로 이어지는 도화선이 되죠. 아신전은 반드시 시즌 1, 2를 다 본 뒤에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그래야만 아신이 건네는 생사초의 무게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4. <킹덤>을 완성하는 디테일: 갓, 한복, 그리고 미장센
외국인들이 <킹덤>을 보고 "Oh, My God(Hat)!"을 외쳤다는 일화는 유명하죠. 저 역시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전통 복식이 이토록 아름답고 위엄 있는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좀비를 베어 넘기는 액션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 같았거든요.
특히 정적인 궁궐의 미학과 동적인 좀비들의 움직임이 대비될 때 오는 시각적 쾌감이 상당합니다. 밤의 어둠과 낮의 햇살, 그리고 눈 덮인 산천의 하얀색과 붉은 피의 대비는 김성훈, 박인제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을 증명합니다. 단순히 잔인한 장면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공간이 주는 압박감을 활용할 줄 아는 영리한 연출이 돋보였습니다.
글을 마치며: 당신에게 '배고픔'은 무엇인가요?
<킹덤>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밥에 굶주린 백성이 괴물인가, 아니면 권력에 굶주린 지배층이 괴물인가. 이 질문은 수백 년 전 조선 시대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한 묵직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아직 시즌 3에 대한 정확한 소식은 없지만, 아신과 이창이 마주하게 될 그날을 손꼽아 기다려 봅니다. 이번 주말, 넷플릭스를 켜고 이 장대한 서사시에 몸을 맡겨보시는 건 어떨까요? 분명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것입니다. 제 글이 여러분의 정주행에 작은 길잡이가 되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