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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혈흔 분석가와 연쇄살인마의 기묘한 공생, <덱스터>를 다시 꺼내며

by sesanglog 2026. 1. 26.

덱스터

 

1. 시작하며: 오프닝의 햄 써는 소리조차 섬뜩했던 그 순간 ☀️🔪

가끔 그런 날이 있습니다. 세상은 참 평화로워 보이는데, 뉴스에서는 도저히 인간이라고 믿기 힘든 범죄자들이 쏟아져 나오는 날 말이죠. 그럴 때마다 우리 마음 한구석에는 아주 위험하고도 짜릿한 상상이 고개를 듭니다. '법이 못 잡으면, 누가 대신 저 괴물들을 치워버릴 순 없을까?' 이런 대중의 은밀한 갈망을 가장 잔혹하고도 매혹적으로 스크린에 옮겨놓은 작품이 바로 미드 <덱스터(Dexter)>입니다.

사실 <덱스터>의 진가는 아주 일상적인 오프닝 시퀀스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면도를 하고, 셔츠를 입고, 햄을 썰고, 오렌지 즙을 짜는 평범한 아침 풍경인데, 연출은 묘하게 살인의 과정을 연상시키죠. 이 드라마를 처음 접했을 때의 그 팽팽한 긴장감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오늘 밤이 바로 그날이다(Tonight’s the night)"라는 나직한 독백과 함께 시작되는 덱스터의 이중생활은, 십수 년이 지난 지금 다시 봐도 여전히 세련되고도 파괴적입니다.

2. 덱스터 모건, 그는 영웅인가 아니면 그저 운 좋은 괴물인가? 🎭

주인공 덱스터 모건(마이클 C. 홀)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인물입니다. 마이애미 경찰청(MPD)에서 가장 실력 있는 혈흔 분석가로 일하며 경찰들에게 도넛을 돌리는 '친절한 동료'지만, 사실 그는 감정이 완전히 거세된 소시오패스입니다. 그의 내면에는 피를 갈구하는 '다크 패신저(Dark Passenger, 어둠의 승객)'가 자리 잡고 있죠.

하지만 덱스터가 여타 살인마 캐릭터와 다른 점은, 그에게는 '해리의 코드'라는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양아버지 해리는 어린 덱스터의 살인 본능을 알아차리고, 이를 '나쁜 놈들만 처리하는 방식'으로 길들였습니다. 덕분에 덱스터는 살인마이면서도 동시에 우리 사회의 쓰레기를 치우는 청소부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묘한 도덕적 딜레마에 빠지게 되죠. "악인을 죽이는 악인을 우리는 응원해도 되는가?"라는 질문 말입니다.

실제로 드라마를 보다 보면 저도 모르게 덱스터가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 증거를 인멸할 때 손에 땀을 쥐며 응원하게 됩니다. 작가진은 시청자를 이 영리한 살인마의 공범으로 만들어버리는 대담한 전략을 쓴 것이죠.

3. 데브라 모건: 덱스터의 유일한 '인간적 연결고리'이자 비극의 씨앗 ⚓

<덱스터>를 말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그의 여동생 데브라 모건(로빈 튜니)입니다. 욕설을 입에 달고 살지만 누구보다 정의롭고 열정적인 강력계 형사인 그녀는, 오빠 덱스터가 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흥미로운 건, 덱스터는 그녀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려 노력하지만, 데브라는 진짜로 그를 사랑한다는 점입니다. 이 둘의 관계는 시즌 전체를 관통하는 거대한 감정적 파고를 만들어냅니다. 특히 시즌 후반부에 이르러 오빠의 정체를 알게 된 데브라가 겪는 처절한 심리적 붕괴는 보는 이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드라마의 진짜 주인공은 덱스터가 아니라, 그의 주변에서 서서히 파괴되어 가는 주변 인물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괴물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되어가거나, 혹은 그 불길에 타 죽어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덱스터>를 단순한 고어 수사물 이상의 비극으로 격상시키거든요.

4. 왜 <덱스터>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인생 미드'로 불릴까? 🩸

단순히 자극적인 소재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 드라마는 매 시즌 등장하는 '메인 빌런'들과 덱스터의 심리전을 기가 막히게 그려냅니다. 특히 시즌 4의 '트리니티 킬러(존 리스고)'와의 대결은 미드 역사상 최고의 에피소드로 꼽히죠. 평범한 가장의 모습으로 수십 년간 살인을 저질러온 트리니티를 보며 덱스터는 일종의 동질감과 동경을 느낍니다. "나도 저렇게 완벽한 가정을 꾸리면서 살인을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위험한 호기심이죠.

하지만 그 대가는 참혹했습니다. 시즌 4의 충격적인 피날레는 수많은 팬을 '멘붕'에 빠뜨렸고, 이후 드라마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덱스터는 끊임없이 평범해지려 노력하지만, 그의 본능은 항상 소중한 것들을 파괴합니다. 이런 '운명적인 비극성'이 <덱스터>를 한 번 잡으면 멈출 수 없게 만드는 중독성의 원천입니다.

또한, 마이애미라는 배경이 주는 독특한 분위기도 한몫합니다. 뜨거운 태양, 화려한 셔츠, 라틴 음악이 흐르는 활기찬 도시 뒤편에서, 가장 차가운 피를 가진 남자가 사냥을 준비한다는 대비는 시각적으로도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5. 마무리하며: 여전히 유효한 덱스터의 마지막 인사 ☕

드라마의 엔딩에 대해서는 여전히 팬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갈립니다. 최근 방영된 스핀오프 <뉴 블러드>까지 포함해서 말이죠. 하지만 확실한 건, <덱스터>만큼 주인공의 내면 독백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시청자를 매료시킨 작품은 드물다는 것입니다.

그는 괴물이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의 부조리에 분노하는 우리의 일면을 대변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의 방식이 정당화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화면 속에서만큼은 그가 비닐을 씌운 방 안에서 메스를 드는 순간, 우리는 기묘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됩니다.

아직 이 작품을 보지 않으셨다면, 혹은 예전에 보다 말았다면 이번 주말 다시 마이애미의 뜨거운 태양 아래로 들어가 보시는 건 어떨까요? 다만 주의하세요. 한 번 발을 들이면 여러분 안에 잠자고 있던 '어둠의 승객'이 깨어날지도 모르니까요.

💡 소소한 관전 팁:

  • 시즌 4까지는 정말 '필수 시청'입니다. 미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직접 확인해 보세요.
  • 덱스터의 목소리 톤 변화에 주목해 보세요. 사회생활을 할 때와 사냥을 할 때의 목소리 깊이가 미묘하게 다릅니다. 마이클 C. 홀의 신들린 연기를 체감할 수 있습니다.
  • 사운드트랙이 기가 막힙니다. 특유의 기괴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배경음악이 몰입도를 200% 올려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