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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현실판 트루먼쇼의 지옥 버전, 드라마 '조각도시'가 던지는 질문

by sesanglog 2025. 12. 24.

디즈니플러스_조각도시

혹시 영화 <트루먼 쇼>를 기억하시나요? 주인공 트루먼을 제외한 모든 세상이 가짜였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던 그 충격적인 이야기 말입니다. 짐 캐리의 마지막 인사가 감동적이었던 이유는, 그가 거짓된 안전보다 불확실한 자유를 택했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말입니다. 만약 그 <트루먼 쇼>가 훈훈한 휴먼 드라마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기 위해 치밀하게 설계된 '지옥도'라면 어떨까요?

 

디즈니플러스가 칼을 갈고 내놓는다는 하반기(혹은 내년) 최대 기대작, <조각도시>의 설정이 바로 그렇습니다.

저는 이 작품의 시놉시스를 보자마자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단순히 "와, 캐스팅 대박이다" 하고 넘기기엔, 이 드라마가 품고 있는 칼날이 너무나 예리해 보였기 때문이죠.

오늘은 단순한 기대평을 넘어, 왜 이 드라마가 '현실판 트루먼 쇼의 지옥 버전'이라고 불릴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350억이라는 거대 자본이 왜 하필 이 음울한 복수극에 투자되었는지 그 이면을 파헤쳐 보려고 합니다.


1. 누군가 내 인생을 '조각'하고 있다

드라마의 제목인 '조각도시'는 중의적입니다. 아름답게 빚어진 예술 작품이라는 뜻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인위적으로 '조각(Sculpted)'되었다는 섬뜩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죠.

주인공 태중(지창욱 분)은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던 남자였습니다. 성실하게 일하고, 소소한 행복을 꿈꾸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흉악 범죄의 누명을 쓰고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보통의 드라마라면 여기서 "억울하다!"를 외치며 증거를 찾아다니겠죠. 하지만 <조각도시>는 한 발 더 나아갑니다.

알고 보니 그의 불행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조각가'라고 불리는 설계자 요한(도경수 분)이 태중의 인생을 송두리째 조작해 지옥으로 만든 것이었죠.

내가 오늘 겪은 불행, 내가 만난 악연, 내가 저지른 실수까지... 이 모든 게 누군가의 각본이었다면? 생각만 해도 미치고 팔짝 뛸 노릇 아닌가요? 저는 이 설정이 좀비가 떼로 나오는 것보다 훨씬 더 현실적인 공포로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가끔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길까?" 하고 하늘을 원망하곤 하는데, 그 원망의 대상이 신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그 분노의 크기는 짐작조차 되지 않습니다.


2. 지창욱의 '피'와 도경수의 '눈'

이 잔혹한 설정을 완성하는 건 결국 배우들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이번 캐스팅을 보고 "디즈니가 작정을 했구나" 싶었습니다. 단순히 인기 배우를 모아둔 게 아니라, 배우가 가진 이미지의 배반을 노렸기 때문입니다.

먼저 지창욱 배우를 봅시다. 그는 로맨틱 코미디에서 달달한 눈빛을 발사하던 배우지만, <최악의 악> 등을 통해 누아르의 진한 맛을 보여준 바 있습니다. 이번에는 그야말로 바닥 중의 바닥을 기어 다닐 예정입니다. 평범한 소시민에서 복수의 화신으로 변해가는 과정, 그 처절한 감정선의 변화가 이 드라마의 핵심 관전 포인트가 될 겁니다. 예고된 스틸컷만 봐도 얼굴에 묻은 피와 먼지보다, 눈빛에 서린 독기가 먼저 보이더군요.

하지만 제가 더 주목하는 건, 빌런으로 변신한 도경수(디오) 배우입니다. 그 맑고 큰 눈망울, 소년 같은 이미지를 가진 그가 타인의 인생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설계자'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게 왜 소름 돋느냐면요, 악당이 험상궂게 생기면 우리는 방어기제를 갖습니다. "아, 저놈 나쁜 놈이네" 하고요. 하지만 천사 같은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파멸로 몰아넣는 사이코패스는? 그 이질감에서 오는 공포가 상당할 겁니다. 도경수가 보여줄 '맑은 눈의 광인'이 <조각도시>의 긴장감을 멱살 잡고 끌고 갈 것이라 확신합니다.


3. 우리는 과연 자유로운가? (사회적 함의)

제가 이 글의 제목을 '현실판 트루먼 쇼의 지옥 버전'이라고 지은 이유는, 이 드라마가 던지는 질문이 2024년의 우리 현실과 묘하게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속 태중의 삶은 '요한'이라는 인물에 의해 조작됩니다. 그렇다면 현실의 우리는 어떨까요?
아침에 눈을 뜨면 스마트폰 알고리즘이 추천해 주는 뉴스를 보고, 인플루언서가 광고하는 옷을 사고,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길로만 운전합니다. 나의 취향, 나의 동선, 나의 소비가 거대 IT 기업의 데이터에 의해 '조각'되고 있는 건 아닐까요?

물론 드라마처럼 극단적인 범죄는 아니지만, "내 의지라고 믿었던 것이 사실은 누군가의 설계였다"는 테마는 현대 사회의 감시 자본주의를 은유적으로 비판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태중이 자신을 가둔 감옥(조각된 도시)을 깨부수고 설계자에게 복수하러 가는 과정은, 단순히 나쁜 놈을 때려잡는 액션 쾌감을 넘어 일종의 해방감을 선사할 것 같습니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나야"라고 외치고 싶은 우리들의 욕망을 건드리는 것이죠.


4. 350억과 <모범택시> 작가의 만남

철학적인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오락적인 측면만 봐도 이 작품은 실패하기 힘든 조합입니다. 제작비가 무려 350억 원입니다. 한국 드라마 시장에서 이 정도 규모면 블록버스터 영화 두세 편을 찍고도 남습니다.

이 돈이 다 어디로 갔을까요? 아마도 태중이 겪는 지옥 같은 현실을 구현하는 세트장, 그리고 후반부 몰아칠 대규모 액션 시퀀스에 쓰였겠죠. 드라마 <모범택시> 시리즈로 시원한 사이다 복수극의 정점을 찍은 오상호 작가가 집필을 맡았다는 점도 신뢰를 더합니다.

오상호 작가의 특징은 '고구마' 구간을 길게 끌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악당을 처단할 때 시청자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통쾌함을 준다는 점입니다. <조각도시>에서도 태중이 당하는 억울함은 초반에 빌드업 되겠지만, 그가 각성한 이후 펼쳐질 복수는 그야말로 '핏빛 카타르시스'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감독 역시 영화 <발신제한>의 김창주 감독이니, 속도감 하나는 보장된 셈이고요.


5. 마치며: 당신의 방아쇠는 당겨졌다

아직 공개 전이지만, <조각도시>는 디즈니플러스가 <무빙> 이후 다시 한번 한국 시장을 뒤흔들 카드가 될 것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단순히 지창욱, 도경수, 이광수, 조윤수 같은 화려한 캐스팅 때문만은 아닙니다.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 봤을 "내 인생이 조작되었다면?"이라는 근원적인 공포를 건드리면서, 동시에 가장 강력한 복수의 쾌감을 약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태중의 복수를 지켜보며 대리 만족을 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드라마가 끝난 뒤, 까만 화면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며 한 번쯤 자문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는, 그리고 나의 하루는 온전히 나의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