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어느 날 문득, 넷플릭스 알림 설정 버튼을 누르며
아, 정말이지 이 드라마는 반칙이에요. 아니, 반칙이라는 말로도 부족하죠. 솔직히 말해서 이건 거의 '치트키' 수준 아닌가요? 처음 캐스팅 기사가 떴을 때 제 반응이 어땠는지 아세요? "세상에, 넷플릭스가 드디어 작정하고 내 통장을 털어가려고 하는구나" 싶었다니까요. 사실 요즘 OTT 구독료도 오르고 볼 건 너무 많아서 좀 지쳐있던 참이었는데, 아이유(이제는 배우 이지은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지만요)와 박보검이라는 이 두 이름 석 자가 나란히 적힌 걸 보는 순간... 네, 제 손가락은 이미 알림 설정 버튼을 누르고 있더라고요. 게임 끝이죠, 뭐.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오늘 여기서 길게 떠들고 싶은 이야기는 단순히 "와, 선남선녀가 나온다! 비주얼 대박이다!" 같은 뻔하디뻔한 찬사가 아니에요. 사실 저는 이 드라마의 제목인 <폭싹 속았수다>를 처음 접했을 때부터 묘한 기분에 휩싸였거든요. 제주도 방언으로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뜻이라는데, 왜 저는 이 문장을 읽자마자 가슴 한구석이 찌릿하면서 눈물이 핑 돌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을까요? 아마도 우리네 삶이, 그리고 우리 부모님의 거친 삶이 누군가에게 "정말 고생했다, 수고 많았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 듣기 위해 달려온 긴 여정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요즘처럼 자극적이고 피 튀기는 마라맛 드라마가 판치는 세상에서, 이렇게 슴슴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평양냉면' 같은 드라마를 기다리는 건 정말 고역이면서도 한편으론 너무나 즐거운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제가 왜 이 드라마에 이토록 목을 매고 있는지, 단순히 배우들의 얼굴 때문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저를 이토록 설레게 하는지 아주 길고 지루하게, 하지만 제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떠들어보려고 합니다.
2. '애순이'가 된 지은이와 '관식이'가 된 보검이, 그 낯선 이름에 대하여
여러분, 이번 드라마에서 아이유가 맡은 역할 이름이 '애순'이래요. '애순'. 이름부터가 벌써 1950년대 제주도의 거친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란 소녀의 느낌이 확 오지 않나요? 우리가 아는 아이유는 화려한 조명 아래서 빛나는 최고의 스타지만, 사실 연기자 이지은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녀는 늘 '결핍'이 있는 인물을 기가 막히게 그려냈거든요. <나의 아저씨>에서 그 차갑고 시린 지안이가 그랬고, <호텔 델루나>에서 천 년의 한을 품었던 만월이가 그랬죠.
그런데 이번엔 무려 '요망진 반항아'랍니다. '요망지다'는 말이 제주도 말로 '야무지다'는 뜻이라는데, 학교도 제대로 못 가는 처지에도 시인을 꿈꾸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세상에 반항하는 애순이의 모습... 상상만 해도 벌써 제 마음은 제주도 어느 낮은 돌담길을 걷고 있는 것 같아요. 지은 배우 특유의 그 단단한 눈빛이 애순이라는 캐릭터와 만났을 때 어떤 스파크를 일으킬지,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그리고 박보검 배우는 또 어떻고요. 이름은 '관식'입니다. 말수가 적고 무쇠처럼 단단한 인물이라는데, 박보검 특유의 그 맑고 투명한 눈망울로 말없이 애순이만 바라보는 '해바라기' 같은 남자라니요. 이건 뭐, 제작진이 시청자들 심장을 아주 박살 내려고 작정한 게 분명합니다. 박보검은 <응답하라 1988>의 택이 때도 그랬지만, 대사보다 눈빛으로, 그리고 그 미세한 표정의 떨림으로 더 많은 말을 하는 배우잖아요. 그런 그가 묵묵히 한 여자를 위해 평생을 바치는 우직한 연기를 한다? 이건 그냥 '인생 캐릭터' 경신 예약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이 두 배우의 조합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아, 이들은 단순히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그 시절을 치열하게 살아냈던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빛나던 청춘을 대신 기록해주고 있구나" 하고 말이죠. 그래서 이 드라마가 저에게는 단순한 콘텐츠 이상의 의미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3. 임상춘 작가와 김원석 감독, 이 조합은 '치트키' 아닌가요?
솔직히 배우들 이름값에 가려져서 그렇지, 저는 이 드라마의 진짜 주인공은 작가님과 감독님이라고 생각해요. 여러분, <동백꽃 필 무렵> 보셨나요? 저는 아직도 그 드라마만 생각하면 가슴이 몽글몽글해지고 코끝이 찡해져요. 임상춘 작가님 특유의 그 따뜻한 시선, 세상의 중심에서 살짝 비껴난 소외된 사람들을 향한 그 다정한 위로... 그게 이번엔 1950년대 제주도로 옮겨간 거잖아요.
임 작가님의 대사는 항상 그래요. 분명 평범하고 일상적인 말인데, 이상하게 가슴에 콕 박혀서 한참을 머물게 만들죠. 사람의 마음을 만질 줄 아는 분이랄까요? 이번 <폭싹 속았수다>에서도 얼마나 많은 명대사가 쏟아질지, 저는 벌써부터 스마트폰 메모장 켜놓고 대기 중입니다.
여기에 김원석 감독님의 연출이 더해진다는 건, 이건 뭐 거의 드라마계의 '어벤져스' 급이죠. <미생>에서 직장인들의 애환을, <나의 아저씨>에서 삶의 무게를 견디는 어른들의 슬픔을 그토록 아름답고도 처연하게 담아냈던 분이잖아요. 김 감독님의 연출은 결코 화려하지 않아요. 하지만 깊이가 있죠.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카메라 워킹 하나하나, 조명 하나하나가 다 이유가 있고 예술입니다.
제가 어디서 듣기로는 이번 드라마 촬영을 위해 제주도의 사계절을 정말 공들여 담았다고 하더라고요. 단순히 예쁜 배경으로서의 제주가 아니라, 인물의 삶과 눈물이 녹아있는 터전으로서의 제주를 어떻게 그려냈을지... 저는 벌써부터 그 영상미에 취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1950년대의 제주를 마치 어제 가본 것처럼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4. 왜 하필 1950년대 제주도였을까?
생각해보면 참 잔인하고도 아픈 시대잖아요.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았고, 하루하루 먹고사는 것 자체가 거대한 투쟁이었던 시절. 특히 제주도는 그 역사적 아픔이 다른 어디보다 깊은 곳이죠. 그런데 드라마는 그 비극적인 시대를 배경으로 '청춘'을 이야기합니다.
저는 이 지점이 참 마음에 들어요. 가장 어두운 시대에 가장 찬란하게 빛났던 청춘들의 이야기. 애순이는 학교에 가고 싶어 하고, 시인이 되고 싶어 합니다. 현실은 척박한 땅에서 감자를 캐고 땔감을 구해야 하는 처지인데도 말이죠. 관식이는 그런 애순이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청춘을 다 바칩니다.
우리는 가끔 잊고 살아요. 지금 내 옆에 계신, 혹은 이제는 사진 속에서만 뵐 수 있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도 이렇게 뜨겁고 치열한 청춘이 있었다는 걸요. 그분들도 누군가를 보며 가슴 설레했고, 이루지 못한 꿈 때문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으며, 사랑 때문에 울고 웃었던 평범한 소년 소녀였다는 사실을 말이죠. <폭싹 속았수다>는 바로 그 지점을 건드리는 것 같아요. "당신들의 삶도 이렇게 눈부시게 아름다웠노라고, 정말 수고 많으셨노라고" 말해주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이 드라마는 단순한 로맨스물이 아니라, 시대를 건너뛰어 우리 모두를 하나로 묶어주는 '기억의 다리' 같은 역할을 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듭니다. 아, 글을 쓰다 보니 점점 더 보고 싶어지네요. 넷플릭스, 도대체 언제 공개하는 건가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웃음)
5. AI는 절대 모를, 우리가 드라마를 기다리는 진짜 이유
요즘은 AI가 글도 써주고 그림도 그려주는 세상이라지만, 저는 확신합니다. AI는 절대 이 드라마가 우리에게 주는 그 특유의 '뭉클함'의 정체를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요. 왜 우리가 촌스러운 이름의 주인공들에게 열광하는지, 왜 흑백 사진 같은 옛날이야기에 눈물을 흘리는지, 그건 오직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공감의 영역이니까요.
저는 이 드라마를 기다리며 제 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서의 기억을 떠올려 봅니다. 쿰쿰한 메주 냄새가 나던 방 안에서,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정체 모를 옛날이야기들. 그때는 그게 그렇게 지루하고 따분했는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그게 다 할머니의 '눈부신 청춘'이었더라고요.
이 드라마는 아마 저에게,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 그런 시간을 선물해 줄 겁니다. 바쁜 일상에 치여 잊고 살았던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 그리고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의 거친 손을 한 번 더 꽉 잡아주고 싶게 만드는 그런 마법 같은 시간 말이죠. 기계적인 분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가슴과 가슴이 만나는 그런 순간을 기대해 봅니다.
6. 글을 마치며: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위로
어휴, 쓰다 보니 글이 생각보다 너무 길어졌네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배우들과 제작진이 만난 작품인데, 이야기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게 인지상정인걸요. 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말을 꼭 하고 싶어요. 드라마 제목처럼, 오늘 하루를 치열하게 살아낸 여러분 모두에게 "폭싹 속았수다(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라고요. 세상이 아무리 차갑고 힘들어도, 우리 맘속에는 애순이 같은 꺾이지 않는 열정과 관식이 같은 우직함이 조금씩은 다 들어있잖아요?
박보검과 아이유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하겠지만, 그들이 연기하는 캐릭터들이 전해줄 따뜻한 위로의 메시지에 조금 더 귀를 기울여보세요. 아마 드라마가 끝날 때쯤이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따뜻하고 포근한 제주도의 봄바람이 불어오고 있을 겁니다. 우리 함께 그날을 기다려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