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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천우희·전여빈·한지은, 세 여자의 골 때리는 동거기 <멜로가 체질>

by sesanglog 2026. 1. 16.

멜로가 체질

 

사실 서른 살이 되면 세상이 확 바뀔 줄 알았어요. 뭔가 어른스러운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고, 통장 잔고는 든든하며, 사랑 앞에서는 흔들림 없는 단단한 자아가 완성될 줄 알았죠. 그런데 웬걸요. 막상 서른의 문턱을 넘어보니 여전히 라면 하나에 목숨 걸고, 이불 킥할 일만 늘어나는 게 현실이더라고요. 드라마 <멜로가 체질>은 바로 그 지점을 아주 발칙하고도 처절하게 파고듭니다. 오늘은 넷플릭스에서 제가 세 번이나 정주행했던, 이른바 '말맛'의 정수라 불리는 이 작품을 아주 찐하게 파헤쳐 보려고 합니다.

 

1. 우리가 이 드라마에 유독 진심인 이유

드라마의 시작은 솔직히 좀 황당합니다. 서른 살 동갑내기 세 친구가 한집에 모여 살게 된 계기부터가 범상치 않거든요. 한 명은 7년 사귄 남자친구와 처절하게 깨지고(임진주), 한 명은 사랑하는 연인을 먼저 떠내보낸 슬픔에 자살 시도를 했다가 겨우 살아남았으며(이은정), 다른 한 명은 철없는 남자에게 속아 애만 낳고 홀로 워킹맘의 삶을 버텨내고 있죠(황한주).

이들의 동거는 단순히 월세를 아끼기 위한 전략이 아니라, 서로의 삶이 무너지지 않게 지탱해 주는 일종의 '생존 연대'에 가깝습니다. 보통의 로코가 남녀 주인공의 '썸'에 집중한다면, 이 드라마는 그 '썸'을 가능하게 하는 혹은 방해하는 우리네 지질한 일상에 더 주목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아, 나만 저러고 사는 게 아니구나" 하는 묘한 안도감이 듭니다. 시청률 1%라는 숫자가 무색하게 이 드라마가 OTT에서 괴물 같은 생명력을 유지하는 비결도 바로 이 '지독한 현실 공감'에 있다고 생각해요.

 

2. 임진주, 이은정, 황한주 : 세 가지 맛의 서른 살

천우희가 연기한 임진주는 정말 독보적인 캐릭터예요. 드라마 작가지만 현실은 백수에 가깝고, 감정 기복은 롤러코스터를 타는데 대사 하나하나가 촌철살인입니다. 7년 연애의 종말을 "사랑한다는 말은 아껴야 했나, 아니면 더 많이 해야 했나" 같은 철학적 고찰로 풀어내는 그녀를 보면, 이병헌 감독의 페르소나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안재홍(손범수 역)과의 티키타카는 로맨스라기보다 말싸움 대결에 가까운데, 그게 또 그렇게 설렐 수가 없어요.

반면 전여빈이 맡은 이은정 서사는 이 드라마의 가장 묵직한 줄기입니다.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성공했지만, 죽은 연인의 환영을 보며 대화하는 그녀의 모습은 보는 내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듭니다. "나 힘들어, 안아줘"라는 한 마디를 내뱉기까지 걸린 그 기나긴 시간들이 그녀의 눈빛에 고스란히 담겨 있죠. 나중에 손석구(상수 역)와의 만남에서 보여주는 그 묘한 텐션은, 상처 입은 영혼들이 어떻게 서로를 알아보는지 소름 돋게 그려냅니다.

마지막으로 황한주(한지은 분)를 빼놓을 수 없죠. 대학 시절 인기 절정이었던 그녀가 홀로 아이를 키우며 제작사 마케팅 팀장으로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대한민국 모든 워킹맘의 눈물 버튼입니다. 드라마 PPL 하나를 성사시키기 위해 자존심을 다 버리고 굽신거리는 장면들, 그러면서도 집으로 돌아와 아이에게는 환한 미소를 보여주는 모습은 우리 시대 여성들이 짊어진 무게를 가볍지 않게, 하지만 유머러스하게 잘 담아냈습니다.

 

3. '말맛'이 주는 쾌감, 그리고 이병헌 감독의 세계관

이 드라마를 논할 때 '대사'를 빼놓는 건 죄악입니다. 보통 드라마 대사가 정보를 전달하거나 감정을 직접적으로 폭발시킨다면, <멜로가 체질>의 대사는 한 번 꼬고, 두 번 비틀어서 마지막에 무릎을 탁 치게 만듭니다. "사랑은 변하는 게 아니라, 조건이 변하는 거다"라거나 "위기 상황에 웃는 자가 일류다? 아니, 위기 상황에 웃으면 그건 미친년이다" 같은 대사들은 정말 무릎을 치게 만들죠.

이병헌 감독은 영화 <스물>이나 <극한직업>에서도 보여줬듯, 인물들을 극한의 상황에 몰아넣고 그들이 내뱉는 엉뚱한 말들로 비극을 희극으로 승화시키는 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이 드라마는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해서, 드라마 현장의 뒷이야기나 제작사의 고충 등을 풍자적으로 보여주는데, 그게 또 전문직 드라마 못지않은 재미를 줍니다.

 

4. 서른, 아직 꽃피지 않아도 괜찮은 나이

결말에 가까워질수록 이 드라마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확해집니다. 우리는 모두 서툰 어른이고, 여전히 실수하며, 내일의 날씨조차 예측하지 못하는 존재들이라는 거죠. 하지만 괜찮다는 거예요. 옆에서 같이 라면 먹어줄 친구가 있고, 내 농담에 웃어주는 동료가 있다면, 비록 '멜로'가 체질은 아닐지언정 '인생'은 살아볼 만하다는 응원을 건넵니다.

드라마 중반부, 세 친구가 거실에 앉아 TV를 보며 맥주를 마시는 장면이 자주 나옵니다. 특별한 대화가 없어도 그 공기 자체가 주는 따스함이 있어요. 그게 바로 이 드라마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 같습니다. 화려한 재벌 2세의 구애도, 시공간을 초월하는 판타지도 없지만, 내 옆방에 살고 있을 것 같은 진주와 은정, 한주의 이야기는 그 어떤 판타지보다 강력한 위로가 됩니다.

 

5. 마치며: 당신의 체질은 무엇인가요?

애드센스 승인을 준비하며 이 글을 쓰다 보니, 저 역시 드라마 속 주인공들처럼 무언가에 도전하고 실패하는 과정 속에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드라마 속 임진주 작가가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드라마를 세상에 내놓듯, 우리 각자의 삶도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닐까요?

혹시 지금 삶이 너무 퍽퍽해서 웃음기조차 메말랐다면, 혹은 서른이라는 숫자가 주는 압박감에 숨이 막힌다면, 오늘 밤엔 주저 없이 <멜로가 체질>을 정주행해보시길 권합니다.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 향이 느껴진 거야"라는 주제곡이 들려오는 순간, 여러분의 마음속에도 작은 꽃 한 송이가 피어날지도 모르니까요.

이 드라마는 단순히 웃기는 코미디가 아니라, 상처받은 이들을 위한 가장 세련된 방식의 포옹입니다. 드라마를 다 보고 난 후, 거울 속의 자신에게 "너도 참 고생 많다, 그래도 꽤 괜찮은 멜로를 써 내려가고 있어"라고 말해줄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