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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우리가 여전히 '장그래'였을 때... 드라마 <미생> 명대사로 본 직장생활 생존기

by sesanglog 2026. 1. 1.

당신은 아직 <미생> 입니까?

 

안녕하세요. 오늘도 지옥철에 무거운 몸을 싣고, 혹은 차가운 모니터 앞에 앉아 '퇴사'라는 단어를 가슴 한구석에 품고 하루를 견뎌내고 계신 모든 미생(未生) 여러분.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지 않나요? "내가 지금 여기서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이 길이 정말 맞는 걸까?"라는 근원적인 의문 말이죠.

누구 하나 시원하게 "너 잘하고 있어"라고 말해주지 않는 막막한 직장생활 속에서, 제가 길을 잃고 마음이 텅 빈 것처럼 느껴질 때마다 비상약처럼 꺼내 보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벌써 방영된 지 1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우리 시대의 바이블이자 인생작으로 꼽히는 드라마 <미생>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처음에 이 드라마가 나왔을 때는 일부러 안 보려고 피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루 종일 회사에서 치이고 왔는데, 집에서까지 남 일하는 서글픈 풍경을 봐야 하나 싶었거든요. 그런데 웬걸요. 1화를 재생하는 순간 깨달았습니다. 이건 단순히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어제의 내 모습'이자 '내일의 내 모습'이라는 것을요. 오늘은 제 가슴을 후벼 팠던, 때로는 무너진 자존감을 다시 세워주었던 <미생>의 보석 같은 명대사들과 함께 우리의 서글프지만 찬란한 직장생활을 천천히 되짚어보려 합니다.


1. "길이란 걷는 것이 아니라, 걸으면서 나아가기 위한 것이다."

"길이란 걷는 것이 아니라, 걸으면서 나아가기 위한 것이다. 나아가지 못하는 길은 길이 아니다. 길은 모두에게 열려 있지만, 모두가 그 길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드라마의 시작과 끝을 관통하는 이 대사, 아마 많은 분이 기억하실 겁니다. 바둑이 인생의 전부였던 장그래(임시완 분)가 원 인터내셔널이라는 거대한 정글에 던져졌을 때, 그는 마치 부모를 잃은 아이처럼 위태로워 보였습니다. 고졸 검정고시 출신, 스펙 전무. '낙하산'이라는 주홍글씨를 단 채 동료들의 차가운 무시와 비아냥을 견뎌내야 했던 그의 굽은 어깨를 보며 참 많이도 울컥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도 처음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을 땐 다 '장그래'였잖아요. 복사기 사용법 하나 몰라서 등 줄기에 식은땀을 흘리고, 사무실 전화 벨소리만 울려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던 그 시절 말이죠. 장그래는 독백합니다.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그 길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결국 멈추지 않고 걷는 자뿐이라고요.

이 말은 냉혹한 현실을 보여주는 동시에 역설적인 희망을 줍니다. 지금 여러분이 걷고 있는 이 막막한 회사 복도, 끝도 없이 반복되는 엑셀 데이터, 의미 없어 보이는 회의들이 결국은 나만의 길을 만드는 과정이라는 사실입니다. 남들이 보기엔 보잘것없고 좁은 길일지 몰라도, 내가 포기하지 않고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모여 결국 '나의 길'이 됩니다. 그게 <미생>이 우리에게 건네는 첫 번째 위로였습니다.


2. "우리 애라고 불렀다..." – 소속감이 주는 눈물겨운 힘

제가 <미생>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꼽으라면 단연 오상식 과장(이성민 분)이 술에 취해 장그래를 "우리 애"라고 부르는 장면입니다. 다른 부서 과장에게 "우리 애가 좀 늦게 퇴근할 수도 있지!"라며 버럭 화를 내던 그 뒷모습. 그 짧은 '우리'라는 두 글자가 장그래의 인생을, 그리고 시청자인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우리는 잘 압니다.

직장 생활하면서 가장 서러울 때가 언제인가요? 일이 산더미처럼 쌓였을 때? 매일 야근할 때? 아니요. 내가 이 거대한 조직의 '이방인'처럼 느껴질 때입니다. 내가 없어도 이 회사는 아무 일 없다는 듯 굴러갈 것 같고, 나라는 존재는 언제든 소모품처럼 갈아 끼울 수 있는 부속품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가장 깊은 무력감에 빠집니다.

그때 누군가가 던진 "우리 그래", "우리 김 대리"라는 말 한마디는 그 어떤 성과급이나 보너스보다 큰 힘이 됩니다. 오 과장의 투박한 그 진심은 장그래에게 단순한 직장을 넘어 '내가 머물러야 할 이유'를 만들어주었습니다. 여러분 곁에는 그런 '우리'라고 불러주는 동료가 계신가요? 아니면 혹시 여러분이 먼저 누군가에게 기꺼이 '우리'라는 울타리가 되어주고 계신가요? 따지고 보면 우린 모두 외로운 섬처럼 일하고 있기에, 그 '우리'라는 연결고리가 더욱 간절한지도 모르겠습니다.


3. "버티는 게 이기는 거다." – 승리보다 값진 생존의 기록

오 과장이 옥상에서 담배 한 대를 태우며 장그래에게 툭 던졌던 이 말은, 대한민국 모든 직장인의 가슴에 문신처럼 박힌 명언이 되었습니다. "버텨라, 버티는 게 이기는 거다. 버틴다는 건, 어떻게든 완생으로 나아간다는 거니까."

우리는 흔히 성공해야 이기는 거라고 배웁니다. 남들보다 빨리 승진하고, 연봉을 수직 상승시키고, 누구나 부러워하는 화려한 타이틀을 달아야 '완생'에 도달했다고 착각하죠. 하지만 이 드라마는 말합니다. 오늘도 무사히 버티고 퇴근해서 가족과 저녁을 먹는 당신이 이미 승리자라고요.

사실 '버틴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럽고 내공이 필요한 일인지 우리는 뼈저리게 압니다. 상사의 부당한 질책을 마른침과 함께 삼켜야 하고, 자존심이 가루가 되는 순간에도 허허실실 웃어야 하죠. 내 성과를 남이 가로채 가도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 입술을 깨물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드라마 속 영업 3팀은 그 모진 풍파를 온몸으로 다 맞으면서도 끝까지 제자리를 지킵니다.

이건 비굴한 굴복이 결코 아닙니다. 자신의 자리를 책임감 있게 지켜내고, 내일 아침 다시 출근할 용기를 내는 것은 엄청난 정신력을 요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오늘 하루도 버텨낸 자신을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당신은 오늘 하루라는 거대한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영웅입니다.


4. 안영이와 장백기, 그리고 한석율: 엘리트들도 아프다

<미생>이 명작인 결정적인 이유는 주인공 장그래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들의 고뇌를 아주 세밀하게 다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게 완벽해 보였던 수석 입사자 안영이(강소라 분)가 가부장적인 조직 문화와 마초적인 상사들 밑에서 온갖 허드렛일을 하며 버티는 모습은 여성 직장인들의 깊은 공감을 샀습니다. 또한, 고스펙의 정석인 장백기(강하늘 분)가 기초적인 엑셀 업무부터 다시 배우며 자괴감을 느끼는 과정은 '나만 잘난 게 아니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죠.

특히 장백기의 에피소드를 보며 '기본기'의 무서움을 다시금 실감했습니다. 강 대리가 장백기에게 계속해서 시켰던 문서 수정 작업들... "내용은 알겠는데 형식이 엉망이네"라며 차갑게 돌려보내던 그 장면, 기억하시나요? 처음엔 장백기가 불쌍해 보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알게 되었습니다. 화려한 기획력보다 중요한 건, 누가 봐도 명확하고 오차 없는 '기본의 힘'이라는 것을요.

현장의 목소리를 대변하던 활력소 한석율(변요한 분)은 또 어떻고요. "현장이 전부다!"라고 외치던 그 긍정적인 청년이 상사의 괴롭힘과 억압적인 분위기에 눌려 자신의 상징 같던 뒷머리를 자르고 웃음을 잃었을 때, 제 마음도 함께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시 일어섭니다. 이들 모두는 각자의 벽에 부딪히며 조금씩 '미생'에서 '완생'으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전쟁터에서 싸우고 있다는 연대감을 주는 대목이었습니다.


5. "최선은 학교 다닐 때나 대우받는 거고..."

오 과장의 이 뼈 때리는 조언은 차갑지만 명확한 프로의 세계를 보여줍니다. "직장은 결과만 대접받는 데야." 참 잔인하게 들리지만, 이것이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현실이죠. 아무리 밤을 새우고 코피를 쏟아도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그 노력은 공중으로 흩어집니다. 장그래는 처음에 이 말을 듣고 큰 상처를 받지만, 이내 깨닫습니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느냐보다 중요한 건, 내가 이 팀에 어떤 '실질적인 기여'를 했느냐라는 것을요.

이 지점에서 우리는 프로의 자세를 배웁니다. 감상에 젖어 있기보다,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바둑 기사 시절의 '수 읽기'를 영업 전선에 활용하는 장그래의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우리에게도 묻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신만이 가진,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무기는 무엇입니까?"라고 말이죠.


6. 당신은 아직 '미생'입니까?

드라마 제목인 <미생(未生)>은 바둑 용어로, '집이나 돌이 아직 완전히 살아 있지 않은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정말 매력적인 단어입니다. '아직 죽지 않은 돌'이며, 동시에 '언제든 완생이 될 가능성이 충분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미생입니다. 완벽한 인생을 사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임원도, 억대 연봉을 받는 전문가도, 각자의 영역에서 허덕이며 다음 수를 고민하는 미생일 뿐이죠. 하지만 드라마는 우리에게 희망의 끈을 절대 놓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비록 계약직이었던 장그래가 정규직 전환이라는 해피엔딩을 맞이하진 못했을지라도, 그는 오상식과 함께 새로운 현장에서 당당히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나갑니다. 회사가 인생의 전부인 것 같지만, 사실 회사는 우리 인생이라는 거대한 바둑판 위에서 아주 작은 조각일 뿐이라는 사실을 그는 온몸으로 증명했습니다.


글을 마치며: 오늘 하루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긴 글을 쓰다 보니 드라마 속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네요. 장그래의 굽은 어깨, 오 과장의 충혈된 눈, 그리고 퇴근길 소주 한 잔에 시름을 달래던 영업 3팀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까지... 마치 저의 지난 10년이 그 안에 다 녹아있는 것만 같습니다.

드라마 <미생>은 우리에게 "무조건 힘내!"라고 억지 응원을 하지 않습니다. 대신 "너만 힘든 거 아니야, 우리 다 이렇게 치열하게 살고 있어. 그러니까 조금만 더 견뎌보자"라고 어깨를 툭 쳐줄 뿐입니다. 그 투박하고 따뜻한 위로가 저는 참 좋았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 혹시 오늘 상사에게 깨져서 마음이 너덜너덜해지셨나요? 아니면 풀리지 않는 업무 때문에 머리싸매고 계신가요? 잠시 창밖을 한 번 보세요. 그리고 스스로에게 꼭 말해줍시다.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어. 조금 늦어도 괜찮아.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길을 가고 있는 거니까."

 

우리는 아직 미생입니다. 그래서 더 뜨겁게 살 수 있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갈 기회가 남아 있습니다.
내일 아침 다시 무거운 출근길에 오르겠지만, 우리의 가슴 속엔 장그래처럼 단단한 '신의 한 수'가 있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오늘도, 내일도 모두 '완생'으로 가는 그 길 위에서 건승하시길 바랍니다. 버티세요, 그리고 결국 이겨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