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할게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습니다.
드라마 하나 보고 이렇게까지 과몰입하는 게 맞나 싶긴 한데, 이번엔 좀 다르네요. 그냥 "재밌다"고 퉁치기엔 제 속이 너무 시끄러워져서요.

1. 아, 진짜 유튜브 좀 그만 쳐다봐야 하는데 (근데 그게 안 돼...)
어제도 새벽 3시였나... 4시였나. 잠은 안 오고 내일 출근은 해야겠고, 억지로 눈 감았다가 결국 또 휴대폰 집어 들었습니다. 그냥 습관이에요, 습관. 손가락이 멋대로 유튜브 쇼츠를 넘기는데, 아시잖아요? 그놈의 알고리즘.
"누가 누구랑 사귀었네", "충격! 이 연예인의 실체", "000, 결국..."
썸네일들 꼬라지 좀 보세요. 딱 봐도 낚시인 거 아는데, 진짜 영양가 하나 없는 쓰레기 같은 정보인 거 뻔히 아는데, 저도 모르게 홀린 듯이 누르고 있더라고요.
영상 내용? 말해 뭐합니까. 근거도 없고, 출처도 불분명한 이야기를 무슨 대단한 국가 기밀이라도 되는 양 떠들어대는데, 소위 그 ‘렉카’ 유튜버들 목소리 톤만 들어도 혈압이 오릅니다. 입에 담기도 싫은 혐오 표현을 섞어가며 남을 깎아내리는데, 그걸 보면서 낄낄거리고 있는 제 자신이 순간 너무 한심해서 휴대폰을 던져버리고 싶었어요. (근데 못 던지죠. 할부 안 끝났으니까... 하...)
진짜 환장하겠는 건, 그런 영상 밑에 달린 댓글들입니다. "이럴 줄 알았다", "관상부터 쎄하더라"... 아니, 본인들은 얼마나 깨끗하게 이슬만 먹고 사시길래 남의 인생을 그리 쉽게 난도질하는지.
‘아니면 말고’ 식의 가짜 뉴스 한 방에 누군가는 밥줄이 끊기고 인생이 박살 나는데, 정작 돌 던진 사람들은 기억조차 못 합니다. 그냥 "재밌네" 하고 슥 지나가면 끝이니까요. 진실? 요즘 세상에 그게 밥 먹여 줍니까. 내가 믿고 싶은 게 진실이고, 내가 욕하고 싶은 놈이 나쁜 놈인 세상이잖아요.
2. 김혜수 누님, 이분은 도대체 어디까지 가시려는 걸까
이런 찝찝한 마음을 안고, 디즈니+ 신작 <트리거>를 켰습니다. 솔직히 처음엔 기대 안 했어요. "또 기자 이야기야? 정의로운 기자가 악당 때려잡는 거? 지겹다 지겨워." 우리가 그런 거 한두 번 봤습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갑자기 '그알' 톤 죄송합니다) 예고편부터 뭔가 쎄하더라고요.
김혜수 배우가 맡은 '오승아' 팀장. 그냥 "연기 잘한다"는 말로는 부족해요. 이 누님은 대체 어디까지 가시려는 걸까요? <타짜> 정 마담, <시그널> 차수현, <슈룹>... 매번 정점을 찍었다 생각했는데 이번엔 '눈빛'의 무게가 다릅니다.
소리 지르고 화내는 연기가 무서운 게 아니에요. 가짜 뉴스가 판치는 이 더러운 판에서, "진실, 그게 대체 뭔데?"라고 묻는 듯한 그 건조하고 피로한 눈빛. 오승아 팀장이 웃지도 않고 덤덤하게 팩트를 꽂아 넣을 때, 제가 새벽에 봤던 그 유튜브 영상들이 겹쳐 보이면서 등골이 서늘해지더라고요.
그냥 멋있는 척하는 캐릭터가 아닙니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라면 흙탕물에 발 담그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 아주 지독하고 처절한 사람 냄새가 나요. 그래서 더 몰입이 됩니다.
3. 그래서, 볼 만하냐고요?
네. 보세요. 두 번 보세요. 그냥 킬링타임용으로 웃고 즐기는 드라마 찾으신다면 비추입니다. 보고 나면 생각이 많아지거든요. 내가 무심코 눌렀던 '좋아요' 하나가, 누군가의 등에 칼을 꽂는 행위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슴 한구석이 뻐근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이 '가짜들의 천국'에서 적어도 내가 뭘 보고 있는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싶다면 이 드라마는 필수 시청 과목입니다.
김혜수 배우의 연기 차력쇼 보는 것만으로도 구독료 본전은 뽑습니다. 아, 그리고 정성일 배우(한도 역)와의 티키타카도 의외로 웃깁니다. 너무 심각하기만 한 건 아니니까 쫄지 마세요.
오늘 밤은 유튜브 끄고, <트리거> 정주행이나 하러 가야겠습니다.
진실이 승리하는 꼴, 드라마에서라도 좀 봐야 속이 풀릴 것 같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