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해 여름, 우리는 모두 파란 고래 한 마리를 가슴 속에 품고 살았습니다. 지하철 전동차 창밖으로 거대한 혹등고래가 유영하는 환상적인 장면이 아니더라도, 주인공 우영우가 회전문을 앞에서 박자를 맞추던 그 서툰 발짓 하나하나에 우리의 마음은 맥없이 무너지고, 또 기분 좋게 들뜨곤 했으니까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단순한 흥행작 그 이상의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도저히 박은빈이라는 배우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아니 박은빈이 아니었다면 결코 완성되지 않았을 ‘우영우’라는 우주가 있었습니다.
1. 침묵 속에 깃든 치열한 사투, 그 떨리는 손가락 끝
사실 고백하자면, 처음 이 드라마가 방영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약간의 우려를 금치 못했습니다. 장애를 가진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는 자칫하면 지나친 동정의 대상이 되거나, 혹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천재성만을 부각해 일종의 ‘판타지’로 전락하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첫 화를 보고 난 뒤, 저는 그런 건방진 걱정을 했던 제 자신을 반성해야 했습니다.
배우 박은빈은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우영우’라는 인간의 삶 그 자체를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유난히도 가늘게 떨리던 손가락 끝, 낯선 환경을 마주했을 때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동자, 그리고 마치 자신만의 리듬을 타듯 엇박자로 내뱉는 대사들. 그건 단순히 흉내를 낸다고 해서 나올 수 있는 디테일이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녀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실존 인물을 모방하지 않고 오직 텍스트를 분석하며 자신만의 우영우를 구축했다고 하더군요. 그 고통스러운 창작의 과정이 화면 너머의 저에게까지 고스란히 전달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가장 소름 돋았던 지점은 그녀의 ‘목소리 톤’이었습니다. 높낮이가 일정하지 않으면서도 명확한 발음으로 법조문을 쏟아내는 그 기묘한 리듬감은, 우영우라는 인물이 세상을 어떻게 감각하고 있는지를 시청자들에게 물리적으로 이해시키는 강력한 도구였습니다. 우리는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비로소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세상의 소음들이 그녀에게는 얼마나 날카로운 칼날처럼 느껴질지, 그리고 그녀가 그 칼날들을 뚫고 법정이라는 전쟁터에 서기 위해 얼마나 큰 용기를 내고 있는지를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2. 회전문이라는 거대한 벽, 그리고 쿵짝짝의 위로
드라마 속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단연 한바다 빌딩 로비의 회전문일 것입니다. 남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그저 스쳐 지나가는 통로일 뿐인 그 회전문이 영우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복잡한 미로처럼 다가옵니다. 저는 이 장면이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장벽’을 은유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효율과 속도만을 강조하는 현대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속도가 늦거나 리듬이 다른 이들은 그 회전문 속에 갇혀 나오지 못하거나, 혹은 아예 입구조차 통과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니까요.
그런 영우에게 이준호가 건넨 제안, “쿵짝짝, 왈츠의 리듬으로 통과해보면 어때요?”라는 대사는 이 드라마가 지향하는 따뜻한 시선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억지로 우리 속도에 맞추라고 강요해왔습니다. “빨리 들어와”, “왜 그렇게 서툴러?”라고 윽박지르며 말이죠. 하지만 드라마는 말합니다. 그저 그 person만의 박자를 인정해주고, 함께 춤을 추듯 그 리듬에 귀를 기울여주면 된다고 말입니다.
박은빈은 이 장면에서 단순히 서툰 연기를 하는 것을 넘어, 그 왈츠의 박자를 타며 한 걸음 내딛는 그 찰나의 순간에 환희와 공포가 공존하는 묘한 표정을 지어 보입니다. 그 표정을 보며 저는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우영우를 회전문 앞에서 밀쳐냈던가.’ 그녀의 연기는 단순히 예능적인 재미를 주는 게 아니라, 보는 이로 하여금 지독한 자기반성을 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3. 권민우의 시기심과 최수연의 햇살 사이에서
작품 속에는 영우를 대하는 두 가지 극단적인 시선이 공존합니다. ‘권모술수’ 권민우와 ‘봄날의 햇살’ 최수연이죠.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최수연처럼 다정하고 싶지만 가슴 한구석에는 권민우 같은 비겁한 시기심을 숨기고 삽니다. “강자인데 약자인 척해서 우리를 기만한다”는 권민우의 외침은, 사실 공정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현대인들의 민낯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박은빈의 우영우는 그 시기심마저도 투명하게 흡수해버립니다. 권민우가 어떤 음모를 꾸미든, 영우는 오로지 사건의 본질과 법의 정의에만 집중합니다. 그 무해하면서도 강력한 힘은 결국 권민우마저도 변화하게 만들죠. 여기서 배우 박은빈의 영리함이 돋보입니다. 그녀는 영우를 결코 ‘성인군자’로 그리지 않습니다. 때로는 이기적이기도 하고,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하며, 사랑 앞에서 서툴게 흔들리기도 하는 평범한 한 인간으로 그려냈습니다.
이러한 입체적인 캐릭터 해석 덕분에 우리는 영우를 동정의 대상이 아닌, 우리가 응원하고 함께 성장해나가야 할 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녀가 법정에서 “제 이름은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입니다”라고 외칠 때, 그것은 자신의 장애를 인정해달라는 호소가 아니라, ‘나는 나일 뿐’이라는 당당한 선언으로 들렸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4. 고래가 사라진 자리, 우리에게 남겨진 질문들
드라마가 끝나고 나면, CG로 구현되었던 고래들은 모두 바다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영우가 남긴 질문들은 여전히 우리 곁을 떠돌고 있습니다. “자폐를 가진 천재 변호사는 사랑받지만, 시설에 갇혀 소리 지르는 자폐인은 외면받는 게 현실 아니냐”는 드라마 속의 뼈아픈 질문은,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아름다운 단면 뒤에 가려진 진실을 직시하게 만듭니다.
배우 박은빈은 이 작품을 통해 한 명의 배우가 사회적 담론을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는지를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그녀가 흘린 땀방울과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들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한 꺼풀 벗겨내는 소중한 마중물이 되었습니다. 단순히 ‘연기를 잘했다’는 찬사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녀는 우영우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 사회가 잃어버렸던 다정함과 무해한 열정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는지를 증명해냈으니까요.
이제 글을 맺으려 합니다. 혹시 지금 삶의 무게에 눌려 자신만의 회전문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나요? 혹은 타인과 다른 나의 리듬 때문에 자책하고 있지는 않나요? 그렇다면 우영우의 고래를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깊고 깊은 심해에서도 결코 길을 잃지 않고 거대한 대양을 가로지르는 그 고래처럼, 우리 역시 우리만의 ‘쿵짝짝’ 리듬을 찾는다면 그 어떤 거친 파도도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박은빈이라는 배우가 우리에게 선물한 이 경이로운 몰입의 기록은, 아마도 아주 오랫동안 우리 가슴 속에서 푸른 파도를 일으키며 살아 숨 쉬게 될 것입니다. 그녀의 다음 행보가 무엇이든, 저는 기꺼이 그녀가 초대하는 새로운 세계로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우영우. 그리고 고맙습니다, 박은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