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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마녀보다 더 지독하다? <폭군>을 보며 느낀 서늘한 아름다움

by sesanglog 2025. 12. 20.

디즈니플러스OTT 폭군

아, 진짜 오랜만에 손가락이 근질근질해서 블로그를 켰네요. 요 며칠 비가 오락가락해서 그런지 기분도 좀 꿀꿀하고, 뭔가 진득하고 어두운 게 당기더라고요. 창밖은 회색빛이고, 방 안은 불을 꺼둔 채 모니터 불빛만 깜빡이는 그런 밤 있잖아요. 넷플릭스는 왠지 다 본 것 같고, 티빙도 볼 게 없어서 디즈니 플러스를 한참 뒤적거리다가 결국... 네, 박훈정 감독의 신작 <폭군>에 발을 들이고야 말았습니다.

사실 보기 전엔 고민 좀 했거든요. 아시잖아요, 박훈정 감독 하면 떠오르는 그 특유의 '가오(?)'랄까, 피 칠갑하는 연출들. "마녀 때만큼의 임팩트가 있을까?" 싶어서요. 솔직히 저는 <신세계>는 백 번도 더 봤지만, 그 이후 작품들은 "음, 좀 과한데?" 싶을 때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번에도 "또 자기복제 아니야?" 하는 삐딱한 마음으로 재생 버튼을 눌렀던 게 사실입니다.

1. 이건 '마녀'의 동생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괴물이다

근데 웬걸, 1화 딱 틀고 앉아 있다가 저도 모르게 자세를 고쳐 잡았습니다. 이건 그냥 '마녀'의 연장선이라고 하기엔 공기 자체가 달라요. 훨씬 더 눅눅하고, 훨씬 더 비릿합니다. <마녀>가 화려한 초능력 쇼였다면, <폭군>은 그냥... 밑바닥 인생들이 서로의 목줄을 물어뜯는 개싸움 같은 느낌? 근데 그게 너무 처절해서 이상하게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하더라고요. 참 나, 사람 피 터지는 걸 보고 아름답다고 느낄 줄이야. 저도 참 제정신은 아닌가 봅니다. (웃음)

작품의 전체적인 톤앤매너가 정말 압권이에요. 영화가 아니라 4부작 드라마로 나온 게 신의 한 수였던 것 같아요. 호흡이 짧으니까 늘어지는 구석이 하나도 없습니다. 빗소리, 구두 굽 소리, 그리고 그 정적 속에서 터져 나오는 총성까지. 사운드 믹싱에 신경을 얼마나 썼는지, 이어폰 끼고 보다가 뒤에서 누가 부르는 줄 알고 깜짝 놀랐다니까요.

2. 차승원, 그리고 김선호... 배우들의 미친 존재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역시 차승원 배우였어요. 아, 이 형님은 진짜 나이가 들수록 왜 이렇게 멋있어지는 걸까요? '임상'이라는 캐릭터로 나오는데, 와... 진짜 소름 돋더라고요. 겉보기엔 그냥 예의 바른 은퇴한 킬러 같은데, 청소기 돌리듯 사람을 치우는 그 무심함이라니.

특히 그 특유의 존댓말 섞인 말투가 압권입니다. "실례지만 잠깐만 죽어주셔야겠습니다" 같은 느낌? (실제 대사는 아닙니다만 느낌이 그래요.) 차승원이 총을 든 게 아니라, 그냥 그 존재 자체가 흉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보는 내내 팔뚝에 소름이 가시질 않았네요. 덥수룩한 수염에 낡은 코트를 입고 나오는데, 그게 그렇게 세련돼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이게 바로 중년의 미학인 걸까요?

그리고 김선호 배우. 솔직히 처음엔 "누아르에 김선호? 너무 선하게 생긴 거 아냐?"라고 생각했거든요. 제 착각이었습니다. 그 맑은 눈으로 광기를 내뿜는데, 와... 사람이 절박해지면 저런 눈을 할 수도 있구나 싶더라고요. 최 국장이라는 인물이 가진 그 고독한 무게감이 모니터 밖으로 뚫고 나옵니다. 자기가 믿는 가치를 위해서 모든 걸 다 버릴 준비가 된 사람 특유의 그 서늘함 말이죠.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에 콕콕 박히는데, 아... 이래서 다들 김선호, 김선호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3. 신예 조윤수, 우리가 주목해야 할 새로운 얼굴

그나저나 이 드라마, 배경이 왜 이렇게 다 어두운지 모르겠어요. 거의 모든 장면이 밤이거나, 비가 오거나, 어두침침한 실내예요. 근데 그게 짜증 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좋더라고요. 덕분에 배우들의 얼굴 근육 하나하나, 미세한 떨림 하나하나에 더 집중하게 됩니다.

특히 신예 조윤수 배우... 와, 이분 어디서 나타난 걸까요? <마녀>의 김다미를 처음 봤을 때의 그 충격이랑 비슷했어요. 아니, 어쩌면 더 날것의 느낌이랄까. 자영이라는 캐릭터가 몸을 던져서 액션을 할 때마다 제 뼈가 다 쑤시는 기분이었는데, 그 눈빛은 진짜 잊히지가 않네요. 연약해 보이는데 절대 꺾이지 않는 그 독기. 앞으로가 너무 기대되는 배우입니다. (이미 팬 됐어요, 저.)

4. 잔인함 속에 숨겨진 철학적인 질문

중간중간 "이건 좀 너무 잔인한 거 아냐?" 싶은 장면도 분명 있습니다. 비위 약하신 분들은 고개를 돌릴 만한 장면들이 꽤 나오거든요. 근데 이상하게 눈을 뗄 수가 없어요. 박훈정 감독이 작정하고 깔아놓은 그 판 위에서 배우들이 미친 듯이 뛰어노는 걸 보고 있으면, "아, 이게 바로 K-누아르의 정점이구나" 싶거든요.

제목이 왜 <폭군>일까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단순히 그 '샘플'의 이름이 폭군이라서일까요? 아니면 힘을 가진 자들이 보여주는 그 무자비한 폭력성을 말하는 걸까요? 드라마를 다 보고 나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괴물 하나씩은 키우고 사는 게 아닐까 하는 좀 철학적인 생각도 들게 만듭니다. 인간의 욕망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끝에서 마주하는 건 결국 허무함뿐인지... 그런 무거운 질문들을 화려한 액션 뒤에 숨겨놓은 것 같아 여운이 더 짙네요.

5. 마무리를 하며: 시즌 2 안 나오면 반칙!

솔직히 4부작인 게 너무 아쉬웠습니다. "어? 벌써 끝이야?"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더라고요. 시즌 2 무조건 나와야 합니다. 아니, 안 나오면 디즈니 플러스 본사 앞에 가서 1인 시위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에요. (농담인 거 아시죠?) 마지막 장면의 그 여운이 너무 길어서, 한동안 멍하니 엔딩 크레딧을 보고 있었네요.

빗소리 들으면서, 혹은 밤늦게 혼자 조용히 몰입할 만한 거 찾는 분들한테는 진짜 강추합니다. 단, 옆에 팝콘 말고 시원한 맥주 한 캔 꼭 챙기시고요. 안 그러면 그 서늘한 기운 때문에 몸이 덜덜 떨릴지도 모르니까요. 아, 그리고 불은 꼭 끄고 보세요. 그게 이 작품에 대한 예의인 것 같습니다.

아무튼, 오랜만에 제대로 된 '맛있는' 어둠을 맛본 기분입니다. 혹시 아직 안 보신 분들 계신다면, 이번 주말엔 다른 거 말고 <폭군> 한번 달려보세요. 저처럼 박훈정 감독 특유의 그 폼 잡는 연출을 평소에 좀 오글거려 하던 분들이라도, 이번엔 그 '가오'가 실력이었다는 걸 인정하게 되실 겁니다.

글이 너무 길어졌네요. 그냥 제 감정이 너무 격해져서 주저리주저리 떠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셨나요? 혹시 저랑 비슷한 포인트에서 소름 돋으신 분 계시면 댓글로 좀 알려주세요. 같이 수다나 떨게... 자, 그럼 전 이만 다시 <폭군> 명장면 돌려보러 가야겠습니다. 다들 꿀잠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