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젯밤에도 문득 잠이 안 와서 유튜브로 '갯차' 하이라이트를 돌려봤어요. 참 신기하죠. 이미 내용을 다 알고, 누가 누구랑 이어지는지, 누가 어떤 아픔을 가졌는지 다 아는데도 왜 볼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미지근하게 달궈지는지 모르겠어요. 아마도 그건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서울이라는 도시가, 그리고 우리가 버텨내고 있는 이 일상이 너무나 차갑고 건조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오늘은 작정하고 이 드라마가 제 마음에 남긴 그 길고 긴 여운들을, 아주 투박하지만 진심을 담아 하나씩 꺼내 보려고 합니다.
👠 잃어버린 명품 구두와 '나'라는 껍데기
드라마의 시작, 혜진이(신민아)가 공진 바닷가에서 그 비싼 구두를 잃어버렸을 때... 사실 전 혜진이가 너무 한심해 보였어요. "아니, 신발 좀 잃어버렸다고 저렇게까지 절망할 일이야?" 싶었죠. 그런데 드라마를 정주행하면서 깨달았어요. 그 구두는 혜진이에게 그냥 신발이 아니었더라고요. 개천에서 용 나려고 발버둥 쳤던 세월,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할부까지 끊어가며 샀던 자존심, 그리고 서울이라는 정글에서 자기를 지탱해주던 유일한 '갑옷'이었던 거죠.
저도 그런 적이 있었거든요. 첫 직장에 들어가서 첫 월급을 탔을 때, 저랑 어울리지도 않는 비싼 가방을 하나 샀어요. 그걸 들고 있으면 왠지 제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고, 남들이 저를 함부로 못 볼 것 같은 그런 기분. 근데 혜진이가 그 구두를 잃어버리고 홍반장이 준 낡은 슬리퍼를 신었을 때, 비로소 혜진이의 진짜 발바닥이 땅에 닿기 시작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화려한 브랜드가 아니라, 공진의 거친 모래알과 차가운 바닷물이 직접 닿는 그 감각. 우리가 살면서 잊고 지냈던 '진짜 나'의 감각을 혜진이는 그렇게 아프게 시작한 것 같아요.
☕ 홍반장, 그 남자의 웃음 뒤에 숨겨진 텅 빈 방
그리고 우리 홍반장... 아니 두식(김선호)이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네요. 처음에 두식이는 정말 완벽해 보였잖아요. 못하는 게 없고, 모르는 사람이 없고, 늘 웃고 있고. 근데 저는 드라마 중반부터 두식이가 웃을 때마다 마음이 아릿하더라고요. 사람이 너무 밝으면 그 이면에 얼마나 깊은 그림자가 있는지 알 것 같아서요.
홍반장은 사실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었잖아요. 자기가 사랑했던 사람들이 자기 때문에 죽었다고 믿는 그 지독한 자기혐오. 그래서 그는 돈도 안 벌고, 정규직도 안 되고, 그냥 마을의 '공공재'처럼 살기로 선택한 거죠. 내가 행복해지면 안 되니까, 대신 남의 전등을 갈아주고, 남의 집을 고쳐주면서 자기 시간을 다 써버리는 거예요. 그게 두식이가 자신에게 내린 벌이었다는 걸 알았을 때, 저는 밤새 꺼이꺼이 울었던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는 오지랖으로 보였을 그 행동들이, 사실은 살고 싶어서 내미는 구조 신호였다는 것. 그 마음을 혜진이가 "홍반장, 이제 그만 울어도 돼"라고 안아줄 때, 제 마음속에 있던 해묵은 상처들도 같이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어요. 우리 모두에게는 그런 사람이 필요하잖아요. 나의 가장 못난 모습, 내가 스스로도 용서 못 하는 그 모습을 보고도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줄 사람 말이죠.
👵 감리 할머니의 감자전과 '어른'의 무게
이 드라마에서 제가 제일 사랑하는 캐릭터를 꼽으라면 단연 감리 할머니예요. 사실 우리 할머니 생각도 많이 났고요. 할머니가 혜진이에게 "사람은 사람 사이에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실 때마다, 그게 얼마나 평범하면서도 위대한 진리인지 새삼 깨닫게 돼요.
특히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동네 사람들이 슬퍼하는 방식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펑펑 우는 게 아니라, 할머니가 좋아하시던 음식을 나눠 먹고, 할머니의 빈자리를 바라보며 옛날이야기를 나누는 그 모습들. 죽음조차 삶의 한 조각으로 받아들이는 공진 사람들의 여유랄까요? 요즘 우리는 죽음도 소음처럼 처리하고 얼른 일상으로 복귀해야 하는 강박 속에 살잖아요. 그런데 공진은 슬퍼할 시간을 충분히 주더라고요. "충분히 아파해야 충분히 떠나보낼 수 있다"는 걸, 저는 감리 할머니의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배웠습니다.
🏘️ 사실 우리는 모두 '공진'을 꿈꾸며 삽니다
조남숙 씨의 수다스러움 속에 감춰진 딸을 잃은 슬픔, 화정 횟집 사장님과 영국 구청장의 그 서툴고도 진한 중년의 로맨스, 그리고 한때 반짝였지만 지금은 잊혀진 가수의 애환까지... 공진은 버려진 사람들의 섬이 아니라, 상처 입은 사람들이 서로의 온기로 치유받는 거대한 병동 같았어요.
제가 이 드라마를 2,500자가 넘게 써 내려가며 찬양하는 이유는 단 하나예요. 이 드라마가 우리에게 "좀 느려도 괜찮아, 좀 못나도 괜찮아"라고 끊임없이 말해주기 때문이에요. 혜진이가 서울에서의 성공을 포기하고 공진에 정착했을 때, 사람들은 실패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사실 혜진이는 더 큰 세상을 얻은 거잖아요. 아침에 눈 뜨면 파도 소리가 들리고, 길을 걸으면 누구나 반갑게 인사하고, 밤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별을 볼 수 있는 세상. 그게 진짜 '성공' 아닐까요?
✍️ 글을 마치며... (하지만 공진의 여름은 계속되겠죠)
솔직히 이 글을 쓰면서도 자꾸 드라마 장면들이 떠올라 뭉클하네요. 갯마을 차차차는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었어요. 저에게는 지칠 때마다 꺼내 보는 '마음의 영양제' 같은 거였죠. 혹시 지금 삶이 너무 팍팍해서 가시를 잔뜩 세우고 계신 분이 있다면, 꼭 이 드라마를 다시 한번 보셨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모두 혜진이처럼 길을 잃기도 하고, 두식이처럼 과거에 묶여 있기도 하지만, 결국 우리를 구원하는 건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해요. 공진의 그 뜨거웠던 여름 햇살과 시원한 바닷바람이 여러분의 마음에도 닿기를 바랍니다.
아, 쓰고 보니 정말 길어졌네요! 😅 그래도 제 진심이 조금은 전달되었을까요? 여러분은 이 드라마에서 어떤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으시나요? 댓글로 같이 수다 떨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