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리뷰]넷플릭스OTT "사랑에 미치다"

by sesanglog 2025. 12. 20.

도파민 중독 시대에 찾아온 지독한 순애보,
드라마 '사랑에 미치다'가 일깨운 먹먹한 잔상

넷플렉스OTT 사랑에 미치다

솔직히 말해서, 요즘 제 일상은 거의 '기계'나 다름없었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우면, 손가락은 자석에 이끌리듯 스마트폰을 향하죠. 1분짜리 쇼츠 영상을 끝없이 넘기다 보면 어느새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립니다. 분명 뭔가를 계속 봤는데, 머릿속에 남는 건 하나도 없는 그 허무함.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도 한 번쯤은 느껴보셨을 '도파민 권태기' 같은 거 말이에요.

그런데 며칠 전,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OTT 목록을 뒤적거리다 아주 오래된 썸네일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2007년에 방영됐던 <사랑에 미치다>였죠. 제목부터가 참... 요즘 감성으로 치면 "너무 대놓고 신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촌스러울 수도 있어요. 하지만 1화를 틀고 10분이나 지났을까요? 저는 스마트폰을 멀찍이 던져두고 화면 속으로 완전히 빨려 들어가 버렸습니다. 18년 전 드라마가 주는 그 눅눅하고도 진한 슬픔이, 제 메마른 감정선을 사정없이 건드렸거든요.

1. "사랑하는 사람을 죽인 남자를 사랑할 수 있을까?" - 잔인한 운명의 장난

이 드라마의 줄거리는 사실 정말 지독합니다. 아니, 잔인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아요. 항공 정비사인 서진영(이미연)은 결혼을 앞두고 불의의 사고로 약혼자를 잃습니다. 그리고 그 사고의 가해자였던 채준(윤계상)은 과실치사로 복역한 뒤 사회로 나오죠. 시간이 흘러 두 사람은 운명처럼 다시 만나게 되는데, 문제는 서로가 누구인지 모른 채 미치도록 사랑하게 된다는 겁니다.

뭐랄까, 요즘 드라마들이 '사이다' 같은 복수나 빠른 전개에 목숨을 건다면, 이 드라마는 아주 천천히, 주인공들이 겪는 고통의 밑바닥까지 시청자를 끌고 내려갑니다. "어떻게 저런 상황에서 사랑이 싹터?"라고 냉소적으로 묻고 싶다가도, 화면 속 채준의 그 처연한 눈빛을 보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게 되더라고요. 논리가 아니라 감정이 앞서는 사랑,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는 사랑이 무엇인지 이 드라마는 온몸으로 웅변하고 있었습니다.

"죽이고 싶을 만큼 미운 사람인데, 살리고 싶을 만큼 사랑하게 되는 그 모순적인 마음. 우리는 그걸 '미쳤다'고 부르는 게 아닐까요?"

2. 이미연과 윤계상, 대체 불가능한 그들의 '통증' 섞인 연기

개인적으로 이 드라마가 18년이 지난 지금도 생명력을 갖는 건, 배우들의 미친 연기력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이미연 배우. '책받침 여신' 시절의 미모도 대단했지만, 이 작품에서 보여준 그녀의 눈물 연기는 정말... 사람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껍데기만 남은 채 살아가던 여자가, 다시 사랑을 느끼며 겪는 그 공포와 설렘을 어쩜 그렇게 투명하게 표현했을까요?

그리고 윤계상 배우를 다시 보게 됐습니다. 지금은 믿고 보는 배우가 됐지만, 당시에는 아이돌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있었을 텐데도 그의 연기에는 날 것 그대로의 슬픔이 묻어납니다. 죄책감에 짓눌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채준이 진영을 향해 손을 뻗을 때, 그 떨리는 손끝 하나하나가 시청자의 가슴에 박힙니다. 요즘처럼 화려한 CG나 자극적인 설정 없이도 오직 배우의 눈빛 하나로 60분을 꽉 채울 수 있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3. 가벼운 연애의 시대, 우리가 잃어버린 '진심'에 대하여

드라마를 정주행하면서 자꾸만 제 과거의 연애들이 오버랩됐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요즘 우리, 너무 똑똑하게 사랑하잖아요. 상처받기 싫어서 마음의 80%만 주고, 상대방의 조건을 따지고, MBTI가 안 맞으면 시작도 안 하는 그런 연애 말이죠. 저 역시도 그랬습니다. 사랑에 내 모든 걸 걸기에는 세상이 너무 팍팍하고, 나 자신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고 믿었거든요.

그런데 <사랑에 미치다>는 자꾸만 저를 혼내는 것 같았습니다. "너, 정말 누군가를 위해 죽을 만큼 아파본 적 있어?"라고 묻는 것 같았죠. 사랑 때문에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남들이 보기엔 비정상적인 선택을 하더라도 오직 그 사람만을 향해 걷는 그 무식하리만큼 순수한 모습들. 그게 비록 드라마 속 설정이라 할지라도, 그 지독한 순애보가 왜 이렇게 부러운 건지 모르겠습니다. 텅 빈 가슴에 뜨거운 피가 다시 도는 느낌이랄까요.

4. 영상미와 OST, 2000년대 감성의 정점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 드라마 특유의 색감이 참 좋습니다. 요즘 드라마들처럼 쨍하고 선명한 느낌은 아니지만, 약간은 빛바랜 듯한, 습기를 머금은 듯한 그 화면이 비극적인 서사와 너무나 잘 어우러집니다. 특히 겨울의 시린 공기와 주인공들의 입김, 그리고 배경으로 깔리는 애절한 OST는 지금 들어도 촌스럽지 않습니다. 이선희 씨가 부른 주제곡 '사랑아'는 전주만 들어도 울컥하게 만드는 힘이 있죠.

밤늦게 이어폰을 꽂고 이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마치 제가 2007년의 어느 추운 골목길에 서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그때의 나는 어떤 사랑을 꿈꿨었나, 나를 설레게 했던 그 목소리는 누구였나... 드라마는 어느새 극 중 이야기를 넘어 저 자신의 추억 여행으로 저를 데려다주었습니다.

마치며: 가슴이 텅 빈 것처럼 느껴지는 당신에게

만약 지금 당신이 자극적인 콘텐츠에 지쳐있거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한없이 가볍게만 느껴져 공허하다면, 주말 하루쯤은 시간을 내서 이 드라마를 정주행해보시길 권합니다. 물론 보고 나면 가슴 한구석이 며칠 동안은 뻐근하고 아플 거예요. 하지만 그 통증이야말로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이자, 여전히 우리 마음속에 사랑이라는 따뜻한 씨앗이 남아있다는 신호일지 모릅니다.

세상은 갈수록 빨라지고 사랑은 점점 더 가성비 좋은 상품이 되어가지만, 가끔은 이렇게 '미련하게' 사랑에 미쳐보는 주인공들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도 꽤 괜찮은 위로가 되네요. 새벽 3시, 마지막 회를 끄고 침대에 누우니 창밖으로 빗소리가 들립니다. 내일 출근길에는 이 드라마의 OST를 다시 들어야겠습니다. 제 안의 차가워진 심장이 조금은 더 따뜻해질 수 있도록 말이죠.

한 줄 평: 도파민의 파도 속에서 건져 올린, 지독하게 아름다운 인간의 진심.